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교회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그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하는 것 맞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연히 현대적으로 각색한 얘기를 아는 형에게서 들었는데, 진짜 지금 상황에 맞게 잘 맞춘 것 같다.
당시의 인식들과도 딱맞게 말이지.
어떤 "복음주의 보수신학자"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 정통 보수 개혁주의 신앙을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용산 주민 강제 철거 정책에 반대하여 투쟁 조끼를 입은 철거민이
종로에서 용산으로 내려가다가 용역 깡패를 만나매
용역 깡패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사님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의 손에 든 투쟁 전단과 조끼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목사님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폭력투쟁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하며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동성애자 중 하나는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통증에 좋은 약을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병원 측에 5만원권 지폐 몇 장을 내어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보수신학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칼빈과 어거스틴 전통에서는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으며,
불법 폭력 집회가 서울 시민의 안전을 해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숨을 쉬시며) 이르시되
"일단 한 대 맞고 우리 차분히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보자" 하시니라
실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마지막에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한다.
곧 죽어도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기 싫었겠지.
왜냐하면 그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지금의 동성애자만큼이나 혐오의 대상이었으니까.
만약 내게 같은 질문을 물어오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동성애자'라고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동성애가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동성애자를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 싫은 거다.
흠... 나도 2000년 전이었다면,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그냥 성경 속의 텍스트만 읽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말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동성애라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동성애를 하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예수님은 세리, 창녀들과 교제 자체를 나누면 안 됐다. 그 시대 때 세리, 창녀들에 대한 종교적 시각이나 현대 동성애자에 대한 종교적 시각은 유사하니까.
예수님은 율법에서 정죄한 범죄 여부와 상관 없이 그 영혼 자체를 사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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